과거 뉴스·음악을 AI가 재현하는 일본 ‘라디오 타임머신’ 실증
회상요법 연구도 효과 확인…기억 자극 기술 주목

다이얼을 돌리면 ‘연도’가 바뀌는 라디오
외형은 1950~60년대 라디오를 본뜬 디자인이다. 이용자는 주파수가 아니라 ‘연도’를 선택하는 다이얼을 돌린다. 예를 들어 1970년을 선택하면 그해의 사건을 기반으로 한 뉴스와 당시 유행했던 음악이 함께 재생된다. AI 음성 진행자가 과거 라디오 방송의 억양과 속도를 모방해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이 장치는 치매 비약물 치료로 알려진 회상요법(Reminiscence therapy)을 기술로 구현해 낸 시도다. 사진이나 음악, 이야기 같은 과거 경험을 떠올리게 하는 자극을 통해 감정 안정과 사회적 상호작용을 돕는 접근이다.
실증 실험에서도 변화가 확인됐다. 니치이학관의 요양시설 입소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파일럿 실증에서 연구팀은 장치를 사용했을 때와 사용하지 않았을 때의 행동을 비교하기 위해 표정 분석, 골격 기반 활동 분석, 발화량 측정 등을 활용했다. 분석 결과 웃음 지표는 평균 8.7% 증가했고, 일부 이용자에서는 23.8%까지 상승했다. 손짓과 몸짓 같은 신체 활동도 약 100% 증가했으며, 발화량은 분당 평균 10.8단어 늘었다.
연구팀은 과거 뉴스와 음악이 다양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면서 이용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설명하려는 동기를 높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석했다.
음악과 기억을 자극하는 돌봄 기술
AI 라디오처럼 기억을 자극하는 장치는 이미 해외에서 등장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음악 기반 회상 장치다.
영국에서는 치매 환자를 위한 단순 음악 플레이어가 보급돼 있다. 큰 버튼과 단순한 조작 방식으로 설계된 라디오 형태 장치에 이용자의 젊은 시절 음악을 저장해 재생하는 방식이다. 익숙한 음악을 들으면 과거 경험과 감정이 함께 떠오르는 ‘자전적 기억’이 활성화되는 효과가 보고됐다.

미국에서 시작한 ‘Music & Memory’ 프로그램은 치매 환자의 젊은 시절 음악을 개인별로 저장해 들려주는 방식이다. 불안과 공격성을 줄이고 사회적 상호작용을 늘리는 효과가 보고됐다. 일본 AI 라디오는 여기에 생성형 AI를 결합해 뉴스와 음악을 함께 재현하는 방식으로 확장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런 기술들의 공통점은 감정과 기억을 동시에 자극하는 경험형 기술이라는 점이다.
연구에서도 확인된 회상요법 효과
이 같은 접근은 연구에서도 뒷받침되고 있다. 2025년 중국과 호주 연구진이 발표한 연구 “Effects of Reminiscence Therapy on Cognitive Function in Older Adults with Cognitive Impairment”는 경도인지장애와 치매 노인을 대상으로 한 18개 연구를 종합 분석한 메타분석이다. 분석에는 총 1,200명 이상이 참여한 임상 연구들이 포함됐다. 연구 결과 회상요법은 인지 기능 개선과 사회적 상호작용 증가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경도인지장애 단계에서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났으며, 옛 사진이나 음악, 과거 경험을 이야기하는 회상 프로그램을 주 30~45분씩 최소 12주 이상 진행했을 때 긍정적인 변화가 관찰됐다. 연구진은 회상요법이 약물 치료를 대체하기보다는 약물 치료와 함께 활용할 수 있는 비약물적 접근이라고 설명했다.
돌봄 기술이 바뀌고 있다
최근 치매 기술은 크게 두 영역으로 나뉜다. 하나는 혈액 검사나 영상 분석 같은 조기 진단 기술이고, 다른 하나는 일상 경험을 활용하는 돌봄 기술이다. AI 라디오 장치는 두 번째 흐름에 속한다. 기술의 목표가 단순한 감시나 안전 관리가 아니라, 기억을 자극하고 관계와 대화를 만들어 내는 데 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도 시니어 기술 개발은 늘고 있지만 대부분 위치 추적, 낙상 감지, 건강 모니터링 같은 안전 관리 기능에 집중돼 있다. 치매 환자의 일상 경험이나 기억을 자극하는 기술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특히 개인의 과거 음악이나 문화 경험을 활용해 기억 회상을 돕는 전용 기기는 거의 개발되지 않았다.
특히 우리의 현재 고령층은 라디오 전성기 세대다. 1970~80년대 대중가요와 방송 문화 같은 공통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과거 라디오 프로그램, 뉴스, 음악 같은 문화 콘텐츠는 개인의 삶의 기억과 직접 연결되는 자극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자원을 체계적으로 활용한다면 한국의 문화 경험을 기반으로 한 한국형 회상 기술 개발도 충분히 가능하다.
돌봄 기술의 방향은 안전 관리 중심에서 삶의 경험을 확장하는 기술로 옮겨가고 있다. 기억과 감정을 자극하는 문화 콘텐츠 기반 기술은 치매 돌봄의 중요한 영역으로, 앞으로 더 정밀한 연구와 검증이 필요하다. 정부가 통합돌봄 예산과 제도 기반을 마련했지만, 고령자의 기억과 감정을 자극할 한국형 문화 콘텐츠 기반 회상 기술 개발은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초고령사회의 돌봄 기술은 안전장치나 모니터링 시스템에 머물지 말고, 기억과 감정, 관계를 자극하는 경험 기반 기술을 정밀하게 설계하는 연구개발이 필요하다. 특히 문화 콘텐츠, 인공지능, 돌봄 현장 데이터를 결합한 회상 기술은 치매 돌봄의 중요한 영역이다. 이러한 접근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실제 돌봄 현장에서 검증하는 노력을 가속화할 필요가 있다.